제목없음 #02

Posted at 2011. 9. 16. 14:58// Posted in 우뎅빵긋/제목없는글


#_ 1
세상의 어느 부모님들이 다 그러하듯. 우리엄마도 예전부터
직업중엔 공무원이 최고라며 내가 공무원이 되길 바란적이 있으시다.
그당시에 나는 당당하게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는 하루종일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그렇게 답답하게 일하는거 싫어. 절대로 그런 직업 안가질꺼야"

그말을 내뱉고 몇년 뒤.
나는 디자이너가 되었고, 공무원보다 두세배나 더 오래-- 더 길게--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서 하루웬종일 날이 새도록 일을 했다.

그리고 깨닳았다. 아. 공무원은 좋은 직업이였구나.


#_ 2
직장생활을 몇년 하다보니 우연찮게 찾아온 이직의 기회로. 나는 지금 여기 공무원들과 함께 일하게 되었다.
사회가 예전과 많이 달라지면서 공무원 사회에서도 디자인이 필요케 된것이다.
일개 "계약직"이라는 명찰을 달고 이 큰 집단에서 일을 하다보니.
왜 공무원이 욕먹고 사는지 알게 됐다고나 할까...

일하고 싶어 안달안달 하는 직장인을 찾아보긴 힘들겠지만
밥벌이 월급을 쥐고있는 사장이 두눈을 시퍼렇게 뜨고 날 쳐다보고있으면
자의든 타의든 어떻게든 노력하여 일을 해나가는 것이 원칙인 사기업에 반해.
월급주는사람이 감시도 안해. 그렇다고 날 쪼아댈 윗사람이 있는것도아냐. 적당히 일하며 적당히 낮잠 자가며.
습관처럼 연장근무를 달아 용돈벌이 하는건 필수. 하루가 멀다하고 출장을 달아 나랏돈 받아가며 놀러다니는건 취미.
두달에 한번씩 워크샵을 핑계로 전국팔도를 여기저기 흥청망청.
(모든 공무원들이 그렇다는건 아니다. 개인블로그이니 태글사절)

컴퓨터로 디자인 신청서 쓰는게 귀찮아 연필로 찍찍 갈겨와서는 홱- 던져주는데
거기다 대고 제대로 컴퓨터로 타이핑해서 주십시오. 하면 그런걸 자기가 해야겠냐며 되려 따져묻는다.
별큰 무리없이 별큰 쪼임없이 별큰 스트레스 없이 세월이 흘러흘러 그 위치까지 올라가
대단한 뱃지라도 단것마냥 권위의식에 똘똘 사로잡힌 전형적인 공무원 스타일이다.

물론 그러한 사람들도 20년전, 30년전엔 그러지 않았겠지만
이 집단이 가진 '어쩔수없는 구조적 특징' 때문에 그렇지 않던 사람들도 그렇게 점점 변해가는것 같다.
점점 더 안일하게. 점점 더 권위적으로.


#_ 3
안정적인 공무원 직업을 갖지못한채 이직을 밥먹듯하는 디자이너의 삶을 살아가는 딸자식을 보며
우리엄마는 공무원 사위가 제일 갖고 싶다고 하신다.
내가 지금 직장에서 공무원들과 함께 일하지만 않았더라도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한 사항이였을 테지만. (고려말고. 노력이라고 해두자.)
공무원의 "공"자만 들어도 치가 떨리는 지금으로썬...

엄마 미안. 안되겠다 그건.



#_ 4
얼마전 팀장님과 둘이서 출장을 가는데 나한테
실제로 공무원들하고 일해보니까 정말 욕먹을만하게 설렁설렁 일하는것 같냐고.
본인이 보기엔 어떤것 같냐는 핵심을 찌르는 질문을 하시는데. 새빨간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실제로 보니까 다들 열심히 하시고 그러셔서 저도 놀랬어요. 라고.

미안합니다. 그거 새빨간 거짓말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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