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5일차. 월정리에서 맞이한 아침. 아침을 간단히 챙겨먹고 나섰다.

일단 또 걷기시작. 지난 몇일 새. 참 많이도 걸었다. 나의 제주도 여행의 8할은 걷고 또 걷는 일들로 기억될듯도 하니..

5박6일의 일정으로 떠나 온 터라 어렴풋이 마지막 날이라고도 할수 있는 하루라 뭔가 욕심이 생길 것 같기도 하였으나

온전히 그 하루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지난 몇일 새 깨달았는지도 모르겠다.

 

 

 

월정리에서 김녕리 방향으로 난 해안도로를 걷기 시작했다. 아침의 하늘은 조금. 어렴풋이 흐렸다.

오전엔 흐리다가도 점심나절엔 비가 내려치고. 오후가 되면 해가 쨍-하게 뜨기도하는.(실제로 이 날이 그랬음)

알수 없는 제주의 하늘은 여행자들을 긴장시킨다.

 

 

 

잘 몰랐었는데 내가 걱던 저 길은 김녕-월정-세화로 이어지는 올레길 20코스..

니네 집주인 어디갔니?


 

 

 

조금 걷다보니 금새 김녕 성세기해변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침나절이라 해변에는 몇명의 관광객들 뿐이다.

파도소리와 찰칵대는 카메라셔텨 소리만이 해변을 채운다.


 

 

제주의 바다는 참 깨끗하다. 이런 풍경 또한  흔하고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런 '것' 까지 카메라에 담는 나에게는 지나치는 제주의 모든 풍경이 경이롭지만

외지에서 제주로 살기위해 들어간 정착민들에게는 처음의 이런 경이로움도 일상이 되겠지.

그만큼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잊고 살게되는것 같다고 한 게스트하우스 주인언니의 말이 생각났다.

 

 

 

해변에서 큰길가로 나와 다시 돌아왔던 길로 가는 동일주버스를 탔다. 세화오일장이 열리는 날. 세화리로 향했다.

 

 

 

세화오일장은 그렇게 큰 규모의 장터는 아니였지만 소박하게 있을건 다 갖춰져 있었다.

점심때를 맞춰 갔던지라 장터에 선 식당에서 칼국수 한그릇을 시켰다. 바로 옆 테이블에선 아저씨들이 대낮부터

막걸리 한사발을 시원하게 들이키신다. 꿀꺽. 캬-- 삐뚤삐뚤하고 큼직하게 썰어져 나온 칼국수의 면발. 맛있다. 정말.

 

 

 

세화장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택시를 잡아탔다. 근처 용눈이오름으로 가자고 하자 택시비를 대략 8000원정도를 부르신다.

조용한 2차선 도로를 한참 달리자 용눈이 오름이 나타났다. 택시에서 내리는데 나갈때 전화하라고 명함 하나를 내미신다.

확실히 이 근방이 버스나 택시가 다닐만한 길목은 아니였지만 나갈땐 걸어나가기로 마음먹었기에 명함은 그냥 가볍게 받고 말았다.

 

 

 

용눈이오름에 도착했을 땐 날이 흐릿흐릿. 하늘이 금방이라도 울것 같았고, 오름에 점점 오를수록

구름이 오름을 덮어버려 멋진 경치는 반쯤 포기해야만 했다.

 

 

오름이야말로 조용히. 소박하게. 여행의 순간을 만끽할 수 있는 제주도 최고의 여행지가 아닐까.

조용히 한발짝 한발짝 오르며 주변을 둘러보다 저 멀리까지 난 길을 바라보고. 올라오다 뒤를 돌아본다.

내가 걸어온 길과 저 멀리 풍경을 함께 공유한다. 마음이 넉넉해지고 푸근해 졌던 오름길.

 

 

 

"최고로 황홀한 순간은 순간에 사라지고 만다. 삽시간의 황홀이다.

셔터를 누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강렬한 그 순간을 위해 같은 장소를 헤아릴 수 없이 찾아가고 또 기다렸다.

누구나 볼 수 있는 그런 풍경이 아니라 대자연이 조화를 부려 내 눈앞에 삽시간에 펼쳐지는 풍경이 완성될 때까지

기다림의 연속이다. 그 한 순간을 위해 보고 느끼고, 찾고, 깨닫고, 기다리기를 헤아릴 수 없이 되풀이했다."   -김영갑

 

 한 사람이, 그 곳의 아름다움을 셔터에 담아내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다 바칠만큼.

그 만큼 오름의 아룸다움은 내 머릿속을 하얗게 비워내기에 충분했다.

 


 

 

다시 월정리로 돌아오니 해가 쨍-하게 떴다. 제주의 날씨란. 참.

어제 다른 곳에서 묵었던 친구가 올때까지 게스트하우스 옥상 테라스에서 여유를 부려본다.

아이패드를 꺼내 파도소리 피쳐링이 제법 어울릴만한 음악을 선곡한 뒤, 책을 펼쳐들고 맥주를 홀짝인다.

이곳이 천국이구나. 그래. 바로 이게 여행의 여유지.

 

 

 

좀쉬었다고 또 그새를 못참고, 친구를 이끌고 바다로 향한다.

 

 

 

아무런것도 내 시선을 방해 하지 않을 만큼 투영하다. 제주의 바다란 이런 것.

 

 

 

잠깐 스노쿨링을 해보지만 월정리 또한 얕다. 스노쿨링은 수심이 깊은 애월에서 하는게 제일인 듯 싶다.

 

 

 

월정리 최고의 대명사. 고래가 될 Cafe.

사이좋게 발 한짝씩 나눠 씻기.


 

 

오늘도 여전히 북적인다. 


 

 

 

어이. 거기. 떨어져. 떨어지라고.

 

 

 

여행을 떠나왔고. 다시 떠나가기 전 날.

'돌아간다' 라는 말보다는 '다시 떠나간다'가 아무래도 더 희망적으로 들린다.

물론 나는 다시 돌아가 일상을 살게 되겠지만, 떠나온 그곳에서 나는 다시 떠나감을 기다린다.

일상을 향한 애틋함이 더해진다. 떠나온 시간만큼 소중히 보내고. 다시 떠나갈 그곳을 기다리는 것.

소중한 여행 5일차. 떠나가기 전날. 떠나갈 곳을 다시 그려보자. 요.이.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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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 제주도를 오면서 꼭 가보고 싶었던 방주교회에 가서 예배도 드리고 교회도 구경하고 싶은 마음에

전날부터 예배시간을 맞추려면 언제 기상해야하는지. 시간계획을 짜놨던터. 일찌감치 게스트하우스를 나섰다.

땅이 약간 젖어있고, 곧 비가 내릴 것만 같은 하늘. 3일째 묵었던 대평리는 교통이 좀 불편한 곳인지라.

동네를 나가는 버스 한대를 무작정기다리다 버스를 타고 기사아저씨께 여쭤봤다.

중문까지 갔다 중문에서 다시 버스를 타야된다는 것이다. 아뿔사. 내계획이 틀어지는 순간.

황급히 다음 지도앱을 키고 내가 탈 버스가 있는 버스정류장을 검색하다

중간에 길이있는 것을 확인하고. 중문까지 가는 시간에 이길을 걸어서 통과하자. 라는 마음으로

버스에서 내렸다. 기사아저씨가 '여기서 내려서 어디로 가려고요?'라고 말씀하시며 고개를 갸우뚱 할 때.

난 알아차렸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내게 벌어질 험난한 시간들을...


 

 

다음 지도어플을 켜놓고 방향을 확인하며 길을 따라 가다보니 골목길이 점점 좁아지며 길은 이미 산길로 변해있었다.

어..머..나....세..상..에......   지도에 나타나있던 이길은 산길이였던 것...!

산등성이 중간중간 감귤밭이 있고 그 옆엔 창고가 하나씩 있고 가끔씩 좁은 그 길사이로 차가 한대씩 지나갔다.

웬지모르게 창고의 분위기와 그 길. 그리고 지나가는 차에서 어떤 미친놈이 "헤이 아가씨~"

외치는 순간. 그때부터 긴장감이 배로 엄습해오며 식은땀을 흘리며 흙탕물이 튀는지도 모른채 산길을 넘었다.


 

 

그 길을 넘고나니 만신창이가 된 내 신발과 샤워를 한듯 땀에 쩐 몰골이 그제서야 눈에 들어왔다.

버스정류장에 앉아서 잠시 생각. 방주교회를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고민.

그래도 이렇게까지 개고생하며 산하나를 넘었는데, 이제와서 일정을 접기엔 아쉬워 다시 택시를 잡아타고 방주교회로 향했다.


 

 

교회는 산 깊숙한 곳에 있어서 택시아저씨조차 지도로 확인이 안되는 곳이라 교회에 몇번이나 전화를 해

위치 안내를 받은 후에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방주교회라는 이름에 걸맞게 회당 주변으로 물길이 나있었고 정갈한 느낌의 건축디자인이 마음까지 차분하게 가라 앉혀 주는 듯했다.

방주교회에 들른 목적이였던, 본당예배는 아무래도 관광객에게는 오픈되지 않는 듯하였다.

예배당 자리가 다 찼던탓인지. 아니면 관광객에게는 본당예배를 오픈하지 않는 까닭인지.

지하예배실로 안내를 받아 티비생중계로 애배를 조금 보다가 이내 나왔다.


 

 

다시 버스정류장을 찾아 가는 길. 이 시간은 지금 돌이켜봐도 어찌나 막막하고 끝이없던지.

7km정도의 거리의 2차선 도로옆을 아슬아슬하게 걸어가며 지나가는 택시를 애처롭게 기다렸던 시간.

이 부근이 제주도의 정가운데. 산중턱 부근으로, 여길 걸어다닐 생각을 하는 여행자는 아무도 없을 수 밖에!.

(주변에 있는거라곤 골프장 뿐이였으니...)

걷고 또 걷고. 걷는걸 좋아해서 시작한 걷기여행은 어느새 걸어야만 하는 여행으로 둔갑하고 있었다. 

결국 택시를 한번 타고 근처 버스정류장에 내렸지만 실제로 버스가 서지않는 무정차 구간이였고.(택시아저씨 밉습미다.)

또다른 택시를 겨우 붙잡아 제주시까지 갈수 있었다. 

 

 

 

제주시터미널에서 동일주버스를 타고 50여분 정도를 달려 월정리에 도착. 날이 흐릿흐릿

사실 여행 4일차인 오늘은 대평리에서 출발해 제주도의 동남쪽 구간을거쳐 성산과 섭지코지를 갈 계획이 있었으나.

험난한 산길 통과 및 방주교회라는 거대한 산을 만난 결과. 예약해놓은 숙소로 바로 올수 밖에 없는 컨디션이였기에

월정리로 일치감치 방향을 선회하였다. 


 

 

월정리. 제주도에 오고싶었던 하나의 이유를 꼭 꼽으라고 한다면 앞뒤 안보고 월.정.리.라고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이곳에서 해야만 하는 한가지가 있었다. 나름 로맨틱(이라고 해둡시다) 한 사람인지라.

여행을 가기위한 동기부여는 한가지 이유에서 시작되곤 한다. (한가지의 이유,또는 한줄의 카피. 누군가의 한마디....등등)

이번 제주도 여행의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되었던. '월정리 해변을 바라보며 커피마시고 돌아오기' 를 꼭 해야만 했기에.

월정리에 이틀숙박을 잡고 유유자적하게 남은 일정을 보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월정리 대표카페 '고래가 될 cafe'  일요일이였고, 날씨까지 흐릿해서 관광객이 한차례 빠져나간 상황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유명세를 탄 이 카페 부근은 사람들의 발길이 제법있었다.

커피한잔하러 들렀더니 때마침 무료 공연이 있다고 해서 잠깐 기다리다 어쿠스틱 공연을 잠시 관람했다.

비가오는 월정리 해변. 어둑어둑한 오후 5시의 창밖. 두눈을 감게 만드는 따스한 기타 소리. 온기를 머금은 아메리카노 한잔.


 

 

 

험난한 길들을 만나며 길위에서 길을 찾은 하루. 이리저리 헤매다 보면, 결국 길의 끝엔 또 다른 길이 나타나더라.

계획과 예상이란게 없었던 여행 4일차도 이렇게 지나갔다.

가끔은 이런 예상밖의 일도. 지나고 나면 다 즐거운 기억이 될 것임이 분명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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